엑소더즈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가 싫었다. 하위문화를 좋아했기에 주변에서 재밌는 것을 딱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방에서 19년 가량 살았던 나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은 여전히 10대의 연장선 같았다. 그 동경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무렵, 학업은 제쳐둔 채로 거의 매일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좋아했던 하위문화의 발자취를 따라 다녔다. 그렇게 도착한 이태원동, 보광동 일대는 목말랐던 갈증을 해소하기에 더할나위 없었다. 동네들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자유의지“ 그래피티, zine을만드는 예술가, 클럽 및 파티, 스케이터 등의 흔적은 가슴을 뛰게했다.

각종 베뉴에서 신나게 놀다보면 해가 떠있었고, 술에 취해 비틀대며 첫차를 탔으며, 그 시간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는 것조차 좋았다. 공공장소에서 몸을 리듬에 맡기면 미친새끼 취급을 받는 이 꽉막힌 나라에 누구의 눈치조차 보지않고 음악을 즐겼던 이태원은 나에게 있어 해방감을 안겨주었던 더없이 소중한 장소로 마음 한편에자리 잡았다. 한편으론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감이 늘 있었기에, 어쩌면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작용했을지도모르겠다.

한번은 클럽에서 이태원에서 자주보이는 편한 옷차림이 아닌 정장-넥타이 차림의 30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한 가운데에서 술 바틀을 들고 머리를 있는 힘껏 흔들면서 지친 내색조차 없이 해맑게 웃고있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표정은 밝지만 그를 조여오는 듯한 넥타이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가끔 목이 쉴 정도로 울다보면 이게 내가 우는건지 웃는건지 구분이 안가는 그런 때가 있지 않는가. 나는 그곳에서 나를 보았다. 조여오는 현실에서 도망가기위해 이태원에 갔다. 그렇게 삶의 애환을 음악 속에서 환기하였고, 또 그렇게 사는 삶이 나에겐 어떠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그랬다. 슬픈 현실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돌파구를 찾아왔다. 슬프고 불안하면 분출하며 힘내며 살아왔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다 그랬으면 한다. 일이 잘 됐으면 잘 된대로, 상사가 지랄해서 좆같으면 그런대로 어디선가 표출했으면 좋겠다. 후련하게 무슨 감정이든 쏟아내고 또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는 곳, 그곳이 나에겐 이태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