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5. 기고글

애도하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직후로도 친구들과 미소 지으며 장난기 가득한 모습들로 카메라롤이 차 있다. 과연 이것이 애도라는 의미에 알맞은 모습일지 의구심이 들 때면 마음 한편 죄스러운 기분이 든다. 오늘에서야 그 당시 사진들을 보기를 꺼려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그 자리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놀란 마음에 위안을 주고받았다. 다만 자리와 자리 사이에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슬픔을 마주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진을 돌아보며 그 당시 마음을 되짚어 보게 되었고, 이는 그때의 침묵에 대한 글이다.

1. 용산 어느 근처. 전시장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고 있었다. 모두 즐겁게 떠들고 즐기는 동안 저 길 위에서 끊임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어디선가 불이 난 걸까, 우리는 이따금 고개를 내밀어 사이렌이 사라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나와 마리오 카트 배틀을 붙던 익명의 사람은 카톡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압사라는 단어를 꺼냈고 게임기를 내려놨다. 당시도, 지금도 그 말에 얼마큼 큰 고통과 슬픔이 따라오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다행히도 연락을 돌린 친구들로부터 답장이 왔으나 안도감과 동시에 사늘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2. 어느 날 지하철.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듯하다. 사람의 부피와 중량, 열기까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에 버스와 지하철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직후엔 잠시간의 고요함이 들렸고 나는 무서웠으며 슬펐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그 외침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3. 어느 날 집 앞. 이름 짓지 못한 슬픔이 문득문득 느껴졌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어서, 슬픔의 경계가 허물어졌던 것 같다. 그건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어쨌든 간에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일 외로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개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이전과 가장 큰 차이는 편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4. 봄 즈음 해방촌. 좋아하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 기뻤다. 오랜 여행을 다녀온 그들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중 티켓 패키지가 있었는데, 미안함 삭제 1회 이용권을 만들어서 한 장씩 떼어 그들에게 드렸다. 집에 돌아가면서 과연 그들이 언제 이걸 사용할까 상상했다.